6화 오쇼젠 타로 “5번 무” 카드와 “마조람"
읽음 4,034 |  2017-08-22




어두웠다. 이 표현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바보는 칠흑 같은 절대적 어둠 속에 서있었다. 그 어둠은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듯 했다. 공간감도 무게감도 사라져버렸다. 바보는 불안감에 떨기 시작했다. 두려웠다. 내쉬는 숨소리마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살려달라고 외치고 싶었으나 그 외침에 대한 바람 역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바보는 아무것도 아닌 그 무엇인가의 상태로 어둠과 하나가 되어있었다.


2014년 영국의 나노테크 전문기업인 Surrey NanoSystems에서 개발된 물질로 반타블랙(Vantablack)*이란 것이 있다. 이 물질은 현존하는 물질 중 가장 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인 검정의 경우 가시광선 흡수율이 95~98%인데 비해 반타블랙의 흡수율은 99.965%에 달한다. 머리카락 1000분의 1 크기의 탄소나노튜브로 이루어진 이 놀라운 재질은 가시광선뿐만 아니라 자외선과 적외선의 파장도 흡수할 수 있으며 반타블랙을 덧씌운 물체는 입체감마저 잃게 된다. ‘무’ 타로 카드를 보면서 이러한 절대적 검정이 떠올랐다. 

* 어원 : Vertically Aligned Nano Tube Arrays (수직으로 정렬된 나노튜브의 배열)의 머리글자를 따왔다


어린 시절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다가 당혹스러워 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가진 색들을 모두 모아서 색칠하면 정말 멋진 색이 나올 줄 알았던 나는 12가지 크레파스를 나름 정성스럽게 합쳐서 칠해보았더랬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점점 더 어두워져 가는 그림에 어찌할 줄 몰라 했던 기억이 난다. 색을 합치면 검정이 된다는 것을 그 때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어떻게 이토록 다양한 색들을 모았는데 검정이 되어버리는지 속상해지기까지 했다. 이러한 속상함에 대한 보상은 이 후 미술시간에 받게 되었다. 선생님은 스케치북에 최대한 많은 색을 사용해서 여기 저기 마음껏 색칠해 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위를 검정 크레파스로 꼼꼼히 덧칠을 하라고 하셨다. 다음의 과제는 연필 깎는 칼을 사용해서 검정 크레파스를 살짝 긁어내주는 것이었다. 검정 아래 숨어있던 화려한 색깔들이 스케치북 위에서 꽃으로, 별로, 무지개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검정에 대한 야속함이 고마움으로 변하던 순간이었다. 마음껏 색색으로 표현했던 그림 위를 검정으로 덧칠할 땐 묘한 불안감과 아쉬움이 있었다. 기껏 예쁘게 칠했는데 그 노력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정말 묘한 것은 그러한 불안감 한 켠에 카타르시스와 같은 감정도 있었던 것 같다. 검정으로 덧칠할수록 모든 것이 하나로 만들어지는 느낌과 색색을 칠하며 애쓰던 그 순간마저 잊고 몰입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조각에 반타블랙을 덧칠한 것. 입체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미지 출처 : www.surreynanosystems.com)


‘무(無)’ 카드는 이러한 검정의 힘을 이야기 하고 있는 듯하다.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고 해서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진정한 가득참이 그 곳엔 공존하고 있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빛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삶 속에서도 검정의 힘이 필요할 때가 있다. 주름지고 굴곡진 삶의 흔적들을 깊숙이 위로하고 덮어주고 싶을 때 ‘무’의 힘과 검정의 도움이 절실할지도 모를 일이다. 절대 검정에 가까울수록 그 깊이는 더욱 더해져서 모든 것들을 빨아들이는 힘이 강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그 엄청난 깊이 앞에 우리는 불안해하고 주저하기가 십상이다. 마치 ‘반타블랙’ 앞에서 느끼는 이질감처럼 말이다. 


이러한 불안감이 현실에서 영향을 미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힘은 ‘향’이다. 다양한 향들이 긴장과 스트레스를 해소 하고 안정감을 준다. 이 중에서 최고의 진정작용을 하는 향을 꼽자면 ‘마조람(Marjoram)’이 아닐까 한다. 마조람은 불면증에 좋은 향으로 유명하다. 그렇다고 자장가처럼 포근한 향이리라 기대했다면 놀랄 수도 있다. 생각보다 날카로운 향이 먼저 와 닿기 때문이다. 날카로움 속에 따뜻함을 간직한 스파이스 계열의 허브향 정도로 마조람을 소개할 수 있겠다. 마조람은 팟 마조람(pot marjoram : Origanum onites), 와일드 마조람(Wild Marjoram : Origanum vulgare), 스윗 마조람(Sweet Marjoram : Origanum majorana) 이렇게 3가지 종류가 가장 대표적이다. 팟 마조람은 추위에 강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고대 이집트에서는 악어 머리를 가진 신 ‘소백(Sobek)’에게 헌정하던 허브였다고 한다. 와일드 마조람은 오레가노 혹은 꽃박하라고 불리우는 것으로 그리스인들에게 장례용 허브로 사용되었다. 스윗 마조람은 아프로디테와 연관이 많으므로 막 결혼한 젊은 커플의 화관을 장식하는 꽃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마조람의 공통된 학명인 Origanum은 그리스어 oros와 gano에서 유래되었는데 ‘산들의 기쁨’을 뜻한다. 그러고 보면 마조람은 참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장례식뿐만 아니라 결혼식에서도 사용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마조람’ 향의 심리적 기능에 대해 Mojay는 이렇게 말했다. 


“이완하게 하고 따스하게 위로하는 마조람 오일은 과도한 생각을 고요하게 하고 심적인 열망을 편안하게 하며 내면의 자신을 풍요롭게 하는 능력을 갖도록 용기를 북돋는다.”


* 출처 : Aromatherapy for Healing the Sprit / Gabriel Mojay 저


일반적으로 심적인 열망이 강할수록 불안감은 커질 수 있을 것 같다. 꼭 이루어야 하고 꼭 가져야만 하고 꼭 알아야만 하는 열망이 강할수록 현실적인 한계에서 부딪히는 좌절감과 두려움은 더 강할 테니까 말이다. 이럴 때 마조람 향은 모든 것을 ‘무’로 덧칠할 것을 이야기 해주는지도 모르겠다. 긴장을 풀고 마음 속 온기를 데워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다. ‘무’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명상의 최고 단계에 도달한 것이고 그 단계에서 배우게 되는 것은 바로 ‘자비’라 불리우는 따스함일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결국 모든 것이 되는 엄청난 검정의 원리를 깨우치기 위해 가장 방해되는 불안감은 ‘마조람’ 향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은 어떨까? 다음의 경우에도 마조람은 좋은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 만성적인 무기력이 찾아올 때

♥ 탈진 상태이지만 여간해선 이완되지 않을 때

♥ 불면증에 시달릴 때

♥ 과도한 업무에 대한 부담이 클 때

♥ 사서 걱정하는 성격 타입의 경

♥ 상실감을 받아들여야 할 때


알 수 없는 어둠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 ‘나’라는 무엇인가가 사라져 ‘아무것도 아닌 무엇’이 될까봐 불안했던 바보는 ‘나’ 역시 원래 ‘아무 것도 아니었음’을, 그리고 그것을 깨우친 순간 ‘모든 것’으로 되살아남을 배웠으리라. 우주 어딘가에 존재할 ‘블랙홀’은 어쩌면 이러한 원리가 아닐까? 우주의 탄생이 블랙홀에서 시작되었듯이 우리 삶의 열매도 모든 것을 흡수해 버려 아무것도 없이 만들어버리는 그 곳에서 발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씨앗은 땅속 어둠 속에 있을 때 그 생명을 틔우듯이 말이다.


마조람 향이 코끝을 스친다. 이제 한 숨 자야겠다. 



  

(오레가노와 스윗마조람, 그리고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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