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오쇼젠 타로 20번 환영의 초월 vs 미르
읽음 5,032 |  2018-01-18



마지막 관문이라고 했다. 바보는 낯선 방으로 안내되었다. 천장과 바닥, 벽면까지 투명한 유리로 이루어진 방이었다. 유리는 일종의 영상 자막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유리화면 위로 태초 우주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영상이 흐르고 있었다. 바보는 공간감이 사라진 유리방에 홀로 남겨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평온함이 온 몸을 감싸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바보는 미소 지으며 두 눈을 감았다. 어디선가 소리가 아닌 소리로 바보에게 말을 걸어왔다. 

“환영을 넘어 실재를 마주할 준비가 되었는가?”

바보는 온화한 미소를 유지한 체 조용히 대답했다.

“준비되었습니다.”


최근 들어 가상현실, 증강현실이라는 용어를 공공연하게 접하게 된다. 가상현실은 VR (Virtual Reality)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사용자가 가상의 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바다 속이나 우주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할 수도 있다. 증강현실은 AR (Augmented Reality) 이라고 부르며 실제 세계에 일부의 가상 그래픽 등을 추가하는 형태를 띤다. 현실과 가상을 섞어서 보여준다는 의미로 혼합현실(MR – Mixed Reality)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증강현실을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가 가구 구입에 적용하는 것이다. 직접 가구를 구입해서 집에 들여놓기 전에 증강현실을 이용해 집에 미리 배치해볼 수 있다. 이런 VR이나 AR기술은 게임이나 의료, 전시, 마케팅, 교육, 쇼핑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앞으로 기술적 정교함도 더해 가리라 생각된다. 


발달되어가는 기술들을 지켜보며 이런 상상을 해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이 사실은 고도의 테크닉이나 차원이 다른 테크닉으로 이루어진 가상현실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너무나 정교한 가상현실에 어지간해서는 이것이 가상현실이라는 것을 인식하기조차 힘든 것은 아닐는지. 삶 통째로 가상현실인지 아닌지는 논하기가 어렵지만 삶 속에서 개인적으로 만들어내는 가상현실은 존재함을 나는 느낀다. 우리에겐 개별 맞춤형 정교한 가상현실기기가 장착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 가상현실기기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만들고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만들기도 한다. 나의 기기를 통해 모든 판단을 하고 그 세상만이 옳은 세상이라고 여기게 되기도 한다. 따라서 나의 기기에서 용납되지 않는 부분은 나의 적이 되기도 하고 논쟁을 통해 이겨야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놓치면 안 되는 사실은 내가 적이라고 규정하고 내가 잘못된 집단이라고 규정한 그들 역시 자기들만의 가상현실 기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그들을 적이라고 규정하는 만큼 그들 역시 나를 적으로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세상에 그토록 수많은 전쟁과 논쟁들이 끊이지 않는 것도 각자가 가지고 있는 맞춤형 가상현실 기기 탓은 아닐까? 개별 가상현실기기를 통해 나의 인생목표를 설정하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적들을 규정하기도 하고 물리쳐야할 경쟁자도 만나고 이러저러한 과정을 통해 인생이라는 것을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깨달음이라는 것은 가상현실기기의 전원을 끌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리라. 자신만의 기기를 꺼버리는 순간 주변의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보일 수 있고 진정한 자신만의 삶의 목적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힘이 나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만의 생각의 틀, 즉 자신만의 가상현실기기에 잡혀서 현실을 보지 못하거나 현실의 힘에 억눌려 비전을 세우지 못하는 상황에 도움이 되는 ‘미르’ 향이 떠오른다.



‘미르’는 흔히 ‘몰약’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맛이 쓴’이라는 의미를 가진 아랍어 mur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는데 학명은 Commiphora molmol이다. ‘미르’ 나무는 수많은 옹이가 막힌 가지에 띄엄띄엄 달린 세 갈래로 갈라진 잎과 작은 흰색 꽃을 피운다. 이 나무에 상처를 내면 줄기에서 연한 노란색의 레진 성분이 흘러나온다. 이 레진 성분이 6주 정도 공기와 닿고 변화되면 적갈색의 눈물로 굳어진다. 4000년 전 부터 사용되어왔던 ‘미르’는 종교적인 용도이든 치료적 용도이든 매우 귀중하게 여겨졌다.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동방박사의 선물에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 ‘미르’이고 이집트의 ‘미이라’ 어원이 ‘미르’를 방부제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는 것을 보면 ‘미르’의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그래서일까?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자라는 ‘미르’나무는 건강하고 멀쩡한 모습을 유지하지 못한다고 한다. 상처를 내어야만 그 곳에서 귀한 수지성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나무에 생채기를 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뜩이나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한데 무수히 많은 상처를 감내하고 있는 모습은 왠지 숙연해지기 까지 한다.

상처의 아픔을 알고 치료법을 터득한 ‘미르’라서 일까? 궤양성이나 만성 상처에 ‘미르’ 에센셜 오일은 도움을 준다. 영국의 약초전문가인 Joseph Miller는 미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하였다.

“열어주고, 데워주고, 말리는 성질이 있는 몰약은 부패를 막고 자궁 질환에 매우 유용하며 자궁의 폐색을 열어주고 월경을 유도하고 분만을 촉진하고 태변을 배출한다. 오래된 기침과 쉰 목소리, 목소리 상실에 마찬가지로 좋다.”

이러한 ‘미르’의 약효는 심리적 몸에도 유사하게 작용한다. 상실감이나 거부감에 의해 깊게 패인 마음의 상처에도 ‘미르’는 도움을 준다. 또한 장례용 허브로 이용되었던 이유도 상처를 어루만지고 정신적 평온함을 찾아주는 효능 때문이었을 것이다.



삭막한 사막에 거칠게 자라난 미르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사나운 모래바람과 내려쬐는 햇살은 겨우 목마름을 견뎌내는 미르의 몸체에 상처를 내기 일쑤였을 것이다. 사람들이 일부러 상처를 내지 않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상처는 빛나는 보석으로 맺힌다. 상처를 치료해 줄 수 있는 훌륭한 약재가 되기도 하고 황금만큼 귀한 존재로 변신을 하니까 말이다. 미르의 이러한 힘은 상처를 주는 다양한 현상을 초월해버린 결과일지도 모른다. 


바보는 드디어 마지막 환희를 맛보았다. 의식 저 편에 환영의 잔존들이 화려한 날개 짓을 하며 아름다운 이별의식을 거행하였다. 살아온 모든 시간들, 배워온 모든 것들, 행한 모든 결과물들이 결국 이것을 깨닫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바보는 평온한 호흡 속에서 명료해짐을 알 수 있었다. 모든 날은 아름다웠고 모든 순간은 소중했으며 모든 상처는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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